그냥 엄마로, 주부로 살면 이상한 거야?
오늘도 아침부터 바쁘다. 아침을 차리고 치우고,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산책하고 그러다 보면 또 점심시간, 다시 또 밥을 하고 치우고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피아노 가르치고..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이렇게 벌써 18년째다. 지금 나의 삶에 대단한 자긍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별 불만도 없다. 탈 없이 건강한 가족이 고맙고, 여전히 실없는 농담에도 서로 배꼽 빠지게 웃는 우리 부부가 감사하다. 또 곧 독립을 앞둔 첫째 녀석이 엄마 아빠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어스름 없이 사랑한다 말하는 어른으로 자라준 게 한없이 감사하다.
한때는 나도 반짝거리는 꿈이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되돌아보면 난 남들이 말하는 꿈도 없었던 거 같다.
이게 이상한 건가?
친구가 있다. 그녀는 늘 꿈꾸는 삶을 동경했고, 자기 계발에 열심이었으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일 운동을 하며, 끊임없이 뭘 배우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함에 자긍심을 가진다. 부지런한 친구다. 엄마가 된 이후에도 그녀는 본인이 원하는 걸 찾고, 그것을 위해 하는 투자는 당연하다 말한다. 혹여나, 엄마가 된 친구들이 본인들을 위한 투자를 머뭇거리면 그러지 말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난 뭐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 그녀의 피드를 보면서 별생각이 없다. 좋아요 누르고, 그냥 잘 사는구나 한다.
그러던 평범한 어느 날 내 안의 삐딱한 무언가가 괜히 딴지를 걸었다.
근데? 그냥 엄마로 살면 이상한 거야? 주부로 살면 멋진 여자가 아닌 거야?
왜 그렇게 자기 개발에 목숨을 걸어? 꼭 꿈을 가져야 하는 거야?
나는 나대로 그냥 잘 살고 있는데, 난 내 삶이 괜찮은데, 이건 가치가 없는 거야?
아니, 그전에 삶의 가치란 걸 꼭 찾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거야?
자기의 기준이 옳고, 그게 가치 있다고 믿는 오만함은 어디서 오는 거지?
내가 꼬인 건가? 저게 꼰대 아닌가?
그녀에게 ‘주부'라는 이름 속 의미는 아마도 자식과 가족을 위한 한없는 희생, 그리고 그 희생으로 인한 스스로의 이름이 없어진, 그야말로 ‘엄마'가 돼버린 ‘슬픈’ 여자의 삶.
옛날 옛적의 그 이야기, 이것이 주부의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과 육아 속에서도 그냥 주부이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길을 찾고, 뭔가를 이루고, 자기계발을 하는 삶이 똑똑한 삶이고, 그게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육아 속에서도 열심히 자기를 가꾸는 엄마들을 멋지다 하며,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자들을 대단한 여성이라 치켜세우며, 성공한 여성상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슈퍼우먼일 뿐, 그들이 훌륭한 여성을 대표하는 표본은 아니다.
나는 그저 반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고정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슈퍼우먼도 괜찮다. 대단하다. 그렇게 사는 게 자기만족이고 그게 행복하면 그렇게 살면 된다.
다만 충고하지 말자. 충고하는 순간 그게 바로 꼰대다.
그냥 주부여도 괜찮다. 꿈같은 거 없어도 괜찮다. 자기계발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괜찮다.
오히려, 맞벌이 부부에게 자란 요즘 세대들은 꼭 꿈을 좇아야 한다든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성공 콤플렉스(?) 따위는 없지 않을까? 그들에겐 엄마의 희생이란 말이 와닿지 않을 것이고, 그 희생을 거룩하다 포장하는 게 어이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부로 살고 있던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던, 본인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제발 넌 꿈이 뭐야? 묻지 말자. 그게 왜 궁금한가? 너나 꿈꿔라.
난 나대로 괜찮다. 지금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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